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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미디어오늘

[책] 아이들 눈에 비친 ‘육아 예능’

  • 입력 2021.03.04 11:12
  • 수정 2021.04.13 09:30

연말 지상파 방송에서 진행하는 연예 대상에서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잊을 만하면 상을 탑니다. 사실 그 인기만큼이나 불편한 지점이 많습니다. 보통 육아는 여성들 몫인데 아버지가 아이를 돌본다는 것만으로 주목받는 것도 그렇지만, 더 큰 이유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에 나오는 집들이 너무 크고 좋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하다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김소영 작가는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이 점을 꼬집었습니다. 

‘세트장’이 아닌 그 유명 연예인들의 실제 집과 거기 사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어린이 시청자들도 봅니다. 물론 별 불편함 없이 보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에겐 꿈꾸기조차 어려웠던 다른 세상 속 집을 보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육아 예능에서 ‘작고 허름한 집’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어린이는 어떤 상황에서 TV를 보고 있을까? 누구와 볼까? 부모와 함께 볼까? 혼자 볼까? 무엇을 하면서 볼까? TV가 놓인 곳은 어디일까? 그 어린이는 화면 속 아이를 부러워할까? 자기 현실과 너무 먼일이라 아무 상관이 없을까? 만일 상관이 없다면 아무 상관이 없을까? 그런 생각에 화면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102쪽)

어떤 어린이들은 TV로 세상을 배웁니다. 특히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죠.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책에 썼습니다. 

KBS 육아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위), MBC 육아예능 '아빠! 어디가?' 화면 갈무리
KBS 육아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위), MBC 육아예능 '아빠! 어디가?' 화면 갈무리

‘육아 예능’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얘기해보죠. 지난해 자녀 앞에서 아버지가 맞는 모습을 연출해 아이를 울린 뒤 인터뷰까지 진행한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았죠. 이 사건에 대해 작가는 ‘제작진이 특별한 악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바로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하는 것”(226쪽)입니다.  

흔히 ‘어린이를 소비한다’는 그 표현을 쓰죠. 작가는 이 말을 자세히 풀어 설명합니다. 때로 어른들은 아이가 너무 예뻐서 아이에게 장난을 칩니다. 혹시 아이가 울면 그 모습도 귀엽다고 생각하고요. 울면 달래주면 되고, 잠깐 울었다고 큰 문제가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 없다”며 이러한 ‘대상화’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작가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어린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함께 해주고, 또래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어린이날인 5월5일 하루는 “모든 TV채널에서 어린이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면 좋겠다”(243쪽)는 상상을 합니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철 지난 영화를 틀어주는 게 아니라 어린이들이 원하는 최신 영화나 드라마,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뉴스 보도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입니다.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지음 | 사계절 펴냄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지음 | 사계절 펴냄

책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서점에서 색칠공부 책을 꼭 쥔 어린아이가 아빠랑 계산대 앞에 서 있습니다. 아빠가 계산을 이유로 책을 달라고 하자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때 서점 사장님이 “따로 계산해드릴까요”라고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계산을 마치자 사장님은 아이에게 “따로 담아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온전한 ‘한 명’으로 대한다는 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유, 귀여워. 몇 살이야? 아빠 드려야지”(45쪽)와 같은 예상 가능한 질문은 정답이 아닐지 모릅니다. 작가는 이 서점 사장님을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는 어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린이. Pixabay License.
어린이. Pixabay License.

더 나아가 어린이들의 사회생활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는 마리아 몬테소리의 ‘어린이의 비밀’에 나온 ‘코풀기 수업’에 대한 경험을 전했습니다. 

몬테소리는 ‘코풀기 수업’이 재밌는 수업이 될 거라고 생각해 준비했습니다. 손수건 사용법 등을 가르쳤죠. 의도와 달리 어린이들은 전혀 웃지 않았고 오히려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몬테소리는 “어린이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건지 모른다고 분석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코를 흘리는 일 때문에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고 때론 부끄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만 제대로 코 푸는 방법을 몰라서 겪는 일이었죠. 

코로나19로 고생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헌신적으로 참여한 집단’이 어린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만 지난 1년간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했고 마음껏 놀지 못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했을 학부모 걱정은 있었지만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진지하게 고민하진 않았던 거죠.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어떻게 어린이를 존중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 책을 모든 어린이와 어른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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